존 뮤어 트레일(JMT)산행기 <2>

아마추어 등반가 김장숙씨가 쓴
존 뮤어 트레일(JMT)산행기 <2>

도나휴 넘어 무리한 17마일

하루목표 14마일‘더 가자’욕심내다 곤욕
오줌소태로 시간 지체, 밤 9시 겨우 도착

세미티 밸리에 도착하자 우리는 준비해온 샌드위치를 먹고 팍 레인저 스테이션을 찾아가서 신청한 퍼밋을 받았다. 그곳에서 곰통을 렌트하는데 5달러란다. 아무 곳에서나 리턴할 수 있고 집에 가져가면 메일로 부쳐도 된다했다. 공연히 비싼 것 사람 수대로 산 것이 후회되었다.
몇 년 전부터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씨드루 곰통이 인기 있다. 서 선생님 부부와 우리 중 한명은 이 새로운 곰통을 가졌다. 트레일 도중에 우리는 한 경고문을 읽었다. 곰의 공격으로 이 씨드루 곰통이 쓸모가 없었단다. 그 사인을 읽고 난 후 며칠 동안 불안했지만 실제로는 별일이 없었다. 아침에 곰통을 가지러 가보면 곰통은 언제나 똑같은 자리에서 발견되었다. 밤새 곰들이 곰통 갖고 노는 소리 때문에 한 잠도 못 잤다는 경험을 안 한 것도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경험해 보고 싶기도 했다. 이 곰통은 때로는 식탁으로 때로는 의자로 이용되었다.
트레일 첫날 해프돔 올라갈 때 곰을 보았다. 나무가 빽빽한 경사진 언덕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조그만 검은 곰이었는데 곰 사냥 전문가인 서 선생님 말로는 늙은 곰이란다. 곰에 대한 얘기는 이것이 전부이다.
요세미티 밸리에는 3개의 캠프장이 있다. 5개월 전부터 오프닝이 있어 일찍 예약해야 하는데 나는 이 행운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커리 빌리지의 캔버스 텐트 캐빈에서 잤다. 4명이 정원인데 우리는 6명이었다. 체크인 할 때 말을 안 하면 그들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보냐. 그러나 이실직고하고, 20달러나 더 내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다.


<백팩은 왜 그렇게 무거운지, 천근같은 두 다리를 옮겨 걷고 또 걷는다>

튜알로이 메도우에도 큰 캠프장이 있는데 반은 예약이 가능하고 반은 first come first serve 이다. PCT 하는 사람은 5달러에 항상 잘 수 있는 사이트가 있기도 하다. 위트니 포탈을 지나서 위트니산 정상을 가기 위해 하룻밤 자야 한다. 그 반대방향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캠프장이 두 곳이 있는데 이 곳은 예약이 필요 없다. 이외에는 존 뮤어 트레일 동안 텐트를 칠 수 있는 모든 곳이 우리의 캠프장이 되었다.
마리아와 나는 2인용 텐트를 사용했다. REZ 해프돔 텐트이었는데 플라이어를 치면 습기도 차단되고 내면의 공간도 제법 넓어서 서서 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 세영이는 1인용 REZ 로드스타를 썼다. 남편이 한국으로 옮겨간 후, 이제는 산에 혼자 다닐 터이니 1인용 텐트가 필요하다고 독립선언하면서, 4명의 아이들로부터 얻어낸 생일선물이었다. 무게는 3파운드 이하로 괜찮지만 치기에 꽤 시간이 걸리는 점이 유감이다.
서 선생님은 1인용 텐트를 가져 오셨는데 플라이어 없이 4계절용으로 개발된 마운틴 하드웨이 제품이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두 분이 주무시고 아침에 일어나면 안팎의 온도 차이로 텐트 내에 이슬이 맺혀서 슬리핑백과 텐트 내면의 모든 것이 젖었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하루 일정이 정해졌다.
일어나자마자 짐을 챙겨서 한두 시간 걷고, 물이 있는 곳을 만나면 아침을 먹으면서 젖은 텐트와 슬리핑백을 말렸다. 그릇 닦고 이 닦고 세수하고, 마실 물은 필터링 해서 준비한 후 선블럭 크림을 바르고 또 하루의 걷기를 시작했다.
도나휴(Donohue Pass)를 넘는 날 본의 아니게 17마일을 걷는 경험을 했다. 우리의 하루 목표는 14마일이었다. 10마일을 넘었을 때 물이 있고 텐트 칠만한 자리가 있었는데 세영이가 더 가자고 제안했다. 그날 밤 하루는 자면 다음날은 Devils Postpile Trail이었다. Reds Meadow Resort가 근처에 있어서 물건을 살 수 있는 상점이 있고 핫스프링에서 무료로 더운물 샤워도 할 수 있다고 해서 꿈이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그 곳까지는 20마일이 넘는 거리였다.
끊임없이 경사진 모래 길만 계속되고 야속한 내리막이 산만 있을 뿐이었다.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날은 이미 저물어 어두워졌다. 나는 설상가상으로 오줌소태 증상이 시작되어 자주 소변을 보고 싶었다. 그러면 백팩을 내리고 일을 본 후 다시 둘러메고 따라가자면 시간이 지체됐다. 앞서 가버린 모든 사람들이 얄밉고 더 가자고 제안했던 세영이가 원망스러웠다. 9시가 되어서야 물소리를 들었고 캠프파이어가 켜 있는 호숫가에 도착했다. 서 선생님은 벌써 텐트를 치고 불을 피워놓고 저녁을 만들고 계셨다. 뒤늦게 텐트를 치는 우리를 도와주시는데 따끔거려서 살펴보니 모기가 사방천지다. 정신없이 저녁을 먹고는 내일 아침은 9시에 기상하기로 하고 밤 인사를 나누었다. 그 날의 일정이 나에게는 트레일 중 가장 지루하고 길었던 고통의 시간이었다.
서 선생님은 항상 선두에 가셨고 마땅한 캠핑자리를 늘 찾아주셨다. 멀리서 캠프파이어를 보고 눈에 익은 텐트를 발견하면 그 날의 여정은 끝나고 안식의 쉼터에 들어가는 순간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캠프파이어 앞에 둘러앉아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면 자연이 커다란 내 집인양 한없이 편안하고 좋았다.
힘들었던 Mather Pass를 넘던 날이다. 졸졸거리며 흘러가는 물 옆에 잘 다듬어진 캠핑자리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서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Mather Pass는 요세미티 밸리에서 150 마일 떨어진 지점이다. 이곳까지 11일만에 주파했으니 남은 거리를 6일만에 가는 것은 무리가 없는 터인데, 오늘 이렇게 고생하며 많이 걸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백팩은 왜 그렇게도 무거운지 두 다리가 천근만 같았다.
서 선생님의 리더십이 의심스러웠다. 자고로 리더의 판단력이 정확해야 백성들의 고생이 없다. 산 주위에는 벌써 어두움이 내려오고 있었고, 앞에 보이는 황량한 언덕 위 커다란 나무들 사이에 서 선생님의 텐트가 보였다. 우리는 식량이 넉넉지 못해서 저녁 먹기 전까지는 너무 허기질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 바 하나와 트레일 밋그 하나, 그리고 물이 점심이자 스낵의 전부였던 것이다. 서 선생님이 미안해 하며 준비해 주신 텐트 자리에 팩을 박으면서 나는 “I’m not happy” 하고 볼멘소리로 말해버렸다.
알고 보니 뮤어 패스와 마더 패스에서 만난 젊은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우리 일정보다 하루 빨리 위트니산에 올라가야 했다. 그들이 목표한 잠자리가 이 곳이었나 보다. 발이 빠르고 잘 걸으시는 서 선생님은 그들과 경쟁을 하셨고 결국은 이겼다.
그들은 다른 장소를 찾으러 더 앞으로 갔다고 했다. 헤드라이트로 밝히며 텐트를 치고 드라이 프로즌 음식을 끓이는 우리를 보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서 선생님을 존경한다. 한참이나 어린 우리를 보고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그 용기와 정직하심이 좋다. 지난여름 1년이 지난 후였는데도 그 때 기억이 생생하셨는지 또 말씀하셨다. 닥터 김이 이렇게 말했지. “I’m not happy 하고 말이야.”


뮤어 패스 정상에 있는 돌집 대피소. 전체 트레일 중 유일하게 있는 집이다. 마리아, 세영과 함께 선 필자

김 장 숙 <시네마 덴탈케어 원장> Tel. (661) 253-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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