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하임 오피스를 시작한 지도 10년이 돼간다.

1996년에 미국으로 이민온 후 USC 치과대학을 1999년에 졸업할 때만해도 우리 집에는 틴에이져가
네 명이 있었다. 막내 쌍둥이 중의 하나인 스텔라는 그 당시에 쥬니어 하이를 졸업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레터를 학교로부터 받았다. 그녀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고, 텔려비젼 앞에
하염없이 앉아있곤 하였다. 물론 숙제는 안하는 때가 더 많았고GPA는 2.0도 안됄 때도 있었다. 나는
치과대학에서 임상과 실습을 마치고 정신없이 밤에 집으로 돌아오면 그러한 딸을 도저히 참을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나도 텔레비젼을 등 뒤에 두고 그녀 앞에 가로막고 앉아서 그녀에게
훈계를 하고 화를 내었다. 그러던 나였기에 지금도 사춘기 자녀를 둔 분들을 보면 이렇게 말한다.
조금만 참고 내버려 두세요. 그냥 사랑만 듬뿍 주시면 돼요.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 됩니다….
(스텔라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 후 대학에 가서는 3년동안 딘스
리스트에 있었다. ) 나는 그런 와중에서 치과를 시작해야 했으므로 크게 부담가지 않는 그런
장소가 좋았다. 그래서 애나하임에서 조그맣고 아담한 오피스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내 생애에서 최고로 바쁘게 일을 많이하고 산다. 이 년 전에 발렌시아에 내 꿈이 실린 새
치과 오피스를 큰 맘먹고 내었기 때문이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두 오피스를 번갈아 가면서
일한다. 한 달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 지 모른다. 책상 위에는 달이 넘게 밀려버린 인보이스가
있음을 알면서도 내일로 미루며 지금 당장 해야하는 일들을 처리한다. 밸리 매거진의 유니스
사장님은 이러한 나에게 원고 재촉을 끝까지 보류하고 기회를 주신다. 정말로 가장 만기된 마감이
되어야 드디어 원고쓰기를 일순위에 두고 밤늦게까지 타이프하곤 한다.
우리 아이들 말에 의하면 엄마는 일이 많아 바쁘기보다는 일의 이피션시가 떨어져서 그렇다고
주장한다. 그 말이 맞는 지도 모른다. 일을 하다보면 꼬리를 물고 연결된 새 일들이 생겨나서 밤 두
시까지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해야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남아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자신을 보면서 내 욕심대로 살다가 내 인생 다 보내는 이기적인 모습니아닌가고 불현 듯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남편이나 아이들도 뒷전이고, 물론 친구나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내 일만
하는데도 하루가 35시간이라면 좋겠다고 말하는 나이다.
이렇게 초라해지고 주눅이 들었던 나에게 작은 사건이 생겼다. 남편이 지난 유월에 집에
다녀가면서 놓고간 책 “살아온 날들의 기적, 살아갈 날들의 기적”을 읽고 난 후의 변화이다. 이 책은
돌아가신 서강대 교수 장영희씨가 잡지 샘터에 연재했던 글들의 모음이다. 태어난 지 일년 만에 큰
열병을 앓고 소아마비가 되어 평생을 목발을 집고 살았다. 유방암을 방사선 치료와 화학 요법으로
완치하고 대학에 다시 강의를 시작학 수 있었는데 결국은 전이된 척추암으로 57세의 나이로 일찍
가셨다. 그녀는 자신의 핸디캡과 투병과 그녀의 삶을 잔잔하게 진솔함으로 엮어나갔다. 코스코
가는 길에 차를 주차장에 대놓고 잠깐 보기 시작한 것이 100도가 넘는 그 차 속에서 꼬박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분이 말하는 동그라미라는 노래는 나도 기억한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얼굴 –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은—풀잎에 연 이슬 처럼 빛나던 눈동자 –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지난 어린 날들의 동심의 세계가 밀물처럼 몰려왔다. 그녀는 자신을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기모순과 약점을 보여 주는데 그러함에 정이 간다. 포기하지 않고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 그 모습에 나도 그리하고 싶다는 욕망을 준다. 편안함과 자신감과
용기와 소망을 주는 책이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현재에서 나를 행복하게 하는 하는 방법을 돼새김했다고 할까. 죽음을 만나고
오면 겸손해지는 것 같다. 붙들었던 많은 줄들을 놓아버리기 때문에 마음에 평안이 온다. 내가
만나는 모든 순간들에 행복을 만들어 가자. 두 치과 때문에 바빠진 나의 삶 속에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의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아졌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내일 내 생이
마감하는 것처럼 내가 알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오늘 나에게 온 환자를 대한다면 나는
벌써 풍요라는 공간으로 옮겨진 것이다. 이기적 삶이 아닐까라고 회의하는 내가 만든 올무로부터
더이상 고민할 필요조차 없겠다.

김 장 숙 <시네마 덴탈케어 원장> Tel. (661) 253-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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