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여행기 <7>

아프리카 여행기 <7>


차 뚜껑을 열고 동물의 세계와 합일하는 사파리 여행을 4박5일 즐겼다. 왼쪽부터 남편 호열씨, 조카 정민, 동생 장화

킬리만자로 산행과 사파리 체험 15일

거대한 천연 분화구서 자연을 만나다

약육강식 야생동물 삶과 생태 그대로
캠핑계획 바꿔 4박5일 라지플랜 선택

일찍 부탁한 아침식사를 거의 끝낼 무렵 하얀 랜드로버 두 대가 나란히 들어왔다. 우리 일행 8명은 4명씩 나누어 타고 사파리 여행을 시작했다. 각 차마다 운전사 겸 가이드가 한 명씩 딸려 있었다. 제리는 그 둘 중에서 경험이 많고 재미있는 친구다. 그의 아버지가 마랑고 호텔 주인인 데스몬드와 사촌지간이다. 그는 대학 졸업자로 영어가 상당히 유창했다.
차가 달려가도 하얀 지붕의 킬리만자로는 한동안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비옥한 산과 들 풍경이 끊임없이 지나갔다.
북부 탄자니아와 케냐는 야생동물과 마사이족으로 유명하다. 탄자니아는 독일의 식민지를 거쳐서 1차대전 후 영국의 식민지로 바뀌었다. ‘사파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냥여정’(hunting expedition in east Africa)으로 설명돼 있으나 이제는 지프를 타고 동북부 아프리카를 누비며 야생동물을 보고 사진 찍는 ‘관광여정’으로 바뀌었다.
제리는 사냥을 반대한다. 총소리조차도 싫어한다. 아프리카 보호지역의 밀렵 얘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코끼리는 50만마리 정도로 추정되는데 상당수가 탄자니아에 있다. 밀렵이 하도 성행해서 1980년대 후반에는 10년 전의 20%에도 못 미치는 수로 줄어들었다. 2년 동안 2만마리가 죽어간 지역도 있다. 상아가 없어진 코끼리 시체들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1989년 상아 교역금지가 실시된 이후에는 그 수가 증가하여 어느 지역에서는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코끼리를 죽여야만 하는 지경이 되었다. 뿔이 있는 또 다른 동물은 리노(rhino)이다. 이것은 코끼리보다는 희귀한데 그롱고로 분화구(Ngrongoro Crater)에서 볼 수 있었다.
마사이족은 아프리카의 ‘전사’로서 유명하다. 일정한 나이가 되어 사춘기로 접어들면 포경수술을 하고 공동생활을 하며 긴 훈련과정을 10년 가까이 지낸다. 그 훈련 중 한 코스인 맨손으로 하는 사자사냥은 오래 전에 금지되었다. 그들은 얼마나 많은 소와 아이를 가졌는가에 따라 부자의 기준을 잡는다. 50마리 소가 있으면 부자이다. 아이는 많을수록 좋으므로 아내가 누구의 아이를 갖더라도 모두 허락하고 양육한다. 마사이족은 일부다처제의 사회이기도 하다.


평화로이 풀을 뜯는 얼룩말들. 언제 사자와 하이에나들에게 잡아먹힐 지 알 수 없다.

처음으로 본 하이에나가 질펀한 흙바닥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를 지나자 이름을 알 수 없는 큰 새떼가 물가에 놀고 있었다. 곧 하나 둘씩 영양(eland)이 보이더니 저 멀리 수없이 많은 각종 동물들이 놀고 있었다. 이곳이 사자의 영역이라고 말해서 우리는 긴장하고 있었는데, 못생긴 흑멧돼지, 와또그(warthog)가 철없이 사자굴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 마리 코뿔소가 그 뿔을 얼굴 중간에 세우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건기가 시작되면 모든 풀이 말라버리고 땅들이 갈라져서 동물들은 물과 먹을 곳이 있는 지역으로 이동을 한다. 그 유명한 코뿔소 떼 이동을 라이온 킹에서 보았을 것이다. 여기의 분화구에서도 밖으로 나가는 대이동은 아니지만 자체 내의 작은 이동이 항상 존재한다고 한다.
해의 따가운 기운이 쇠하여지고 그림자가 길어지면서 신선한 바람이 시작되었다. 호텔에 돌아가면 씻고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 차가 진흙에 빠졌다. 바퀴가 헛돌고 나오질 않는다. 결국 우리는 차에서 내렸고 두 시간 넘게 차를 꺼내려는 시도는 계속되었다.
해가 저물어 천년요새의 아름다운 울타리 너머로 넘어가버리자 동물들이 차츰 한 곳에 덩어리로 모여들었다. 외따로 멀리 있던 것은 바삐 무리를 향하여 달려갔고 음산한 하이에나가 어슬렁거리면서 끈질기게 한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제리는 우리에게 함께 모여 있으라고 소리쳤다. 모기들이 극성스럽게 달라붙기 시작한다. 말라리아 약을 먹었으니 죽지는 않겠지.
한참 후에 레인저 차가 불을 켜고 와서 지프를 꺼내보려 시도했는데도 오리무중이었다. 칠흙 같은 어둠이 온천지에 깔렸고 제리가 이렇게 제의했다. 한 차로 모두 호텔에 돌아가면 내일 아침 일찍 자기들이 와서 다시 시도해 보겠노라고. 우리 10명은 한 차에 모두 끼어 앉았다. 정말 비좁았다. 레인저 차가 앞장서서 길을 가이드 해주었다. 레인저와 헤어지고도 언덕길을 한참 달린 후 호텔에 도착하니 밤 10시였다. 포장 안 된 그 험한 길을 차가 기우뚱거리면서 올라올 때 우리 모두 여행자 보험을 들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했다.
늦은 저녁을 황급히 먹고는 침대에 누우니 사파리도 킬리만자로 산행 못지않게 힘들구나 생각되었다. 그러나 어둠이 깔리던 분화구에서 우리는 자연과 만났다. 차가 진흙 속에 있는 동안 우리는 아프리카의 해 저무는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았고 바람 속에 실려오는 야생동물들의 냄새도 맡았다. 하루가 지는 것을 고하는 새소리를 들으면서 아름답고도 쩌렁거리는 그 목청에 감탄했다. 울창한 나무 사이 길을 힘들게 올라오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헤드라이트 불빛에 코뿔소가 떼거지로 보였다. 그들은 양 옆에서 우리 차를 에스코트하며 함께 동행해 주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호텔의 사인이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켰다. 순간적으로 문화 속으로 되돌아오니 안심이 되며 조금 전의 속삭임을 잊기 시작하였다.

김 장 숙 <시네마 덴탈케어 원장> Tel. (661) 253-3030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070511/38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