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드닝이 좋다.

나의 집은 터헝가(Tujunga) 에 있다. 천 스퀘아 피트가 미처 안되는 작은 집이지만 별장과 같은
특별한 분위가 있어서 한 번 와 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시 오고싶어한다.
앞으로는 4,500 피트 높이의 작은 산으로 막혀 있다. 지난 여름에 앤젤레스 마운틴을 다 태운
산불은 이곳도 깡그리 태우고 지나갔다. 경찰의 지시대로 나흘 동안 피신갔다가 돌아와보니 잿빛
산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산은 역시 멋졌다. 얼마 전에 스톰이 지나갔고, 요즈음에 자주
비가와서 물흘러가는 소리가 밤에는 무척 시끄럽다. 산 속의 댐에서 수문을 열어놓았는가.
집 앞길을 따라 가다가 알파인 웨이로 올라가면 길이 끝나면서 산이 시작되어 화이어로드로
연결된다. 낮은 산허리를 두르면서놓인 이 화이어로드 위쪽은 모두 타버렸고, 집들이 들어선 그
아래쪽은 모두가 보호되었다. 지난 이바큐에이션기간 동안에 밤마다 혹시나 집에 갈 수
있을까하고 훗힐 길을 통해서 둘러보았다. 내 생애에 이처럼 불구경을 적나라하게 해본 것은
처음이다. 밤에 보이는 불바다는 많은 집을 태웠을 거라고 확신을 주었다. 그러나 막상 돌아와보니
타버린 집은 단 한채도 못보았다(빅 터헝가 캐년을 따라 들어가면 산 속에 탄 집들의 잔재를 볼 수
있다). 얼마나 화이어 화이터들이 체계적으로 산불을 관리했는 지 고마움이 절로 생긴다. 미국이란
나라의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감탄해하며 경험했다. 나의 옆집에 사는 캔디와 루디는 60세 가까운
부부이다. 그들은 끝까지 집에 머무렀다. 40년 가까이 살아온 집인데 지킬 수 있는 마지막까지
있겠다며 경찰의 권유에도 막무가내로 따르지않았다고 했다. 내가 집에 돌아오니 그 동안에 겪은
무용담과 불이 타들어오던 풍경들을 흥분해서 세세하게 말해주었다.
재작년 추수감사절 이후에 시작된 나의 알러지성 천식은 화재 후에 더욱 심해졌다. 나의 집은
빅터헝가 캐년 입구에 위치하므로 골바람이 심하다. 바람이 불면 하늘이 까맣게 재로 뒤덮였다.
집의 벽이며, 나무의 잎이며, 식물의 꽃이며, 모든 곳에 잿가루와 먼지가 내려 앉았다. 나는 이 집을
5년 전 부동산이 제일 높을 때 샀기 때문에 지금은 반절 값밖에 안된다. 집 융자가 집 시세보다 훨씬
웃돈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의 집에대한 애착을 결코 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는 호흡이
짧아지고 답답하여 인헤일러를 쓰기 시작하면서 과연 내가 사는 이 곳이 나에게 맞는 곳인가
처음으로 회의론적 의심을 해보았다.
이번 비에 그동안 무시무시하게 날아다니던 잿가루와 먼지들이 모두 씻겨갔다.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벼르고 별러서 기다리던 중노동 가드닝을 했다. 넉넉한 비로 땅이 촉촉하니 이 때를
놓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바닥에 깔려있던 커다란 돌들을 재배열하여 잔디를 반으로 줄이고
꽃밭을 넓혔다. 작년에 물을 제한하는 시의 정책을 따르다보니 잔디가 반 이상이나 죽었기
때문이다. 아침 7시부터 시작하여 밤 8시에는 불을 켜놓고 삽질을 했다. 빨리 환한 내일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노곤했지만 하고싶었던 것을 실컷하니
행복하였다. 주중에가드닝서비스하러 오는 사람에게 몇푼 더주고 일을시키면 되련만, 나의
모자라는노동력으로 곡갱이로 돌을 파서 힘들게 옮기고 천삽뜨기 운동을 하는 내가
모순덩어리이다. 해야하는 많은 일들을 뒷전으로 미루어 놓고, 왜 내가 땅이 마르기 전에
가드닝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정했을까? 그 답은 한가지-내가 좋아하니 하고 싶어서이다. 밥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일하는 나에게 내 딸 아령이는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빨리 날이 밝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엄마를 보고 웃었다. 그녀가 나에게 날마다 하던 잔소리
“엄마, 가드닝하는 시간에 집안을 치우면 더 좋을텐데…”를 그날에는 하지 않더라.

가드닝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도 같다. 지금은 뿌리를 심지만, 지금은 조그만 싹이지만,
자라서 꽃이 피면 이루어질 조화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린다. 키가 큰 것, 작은 것, 꽃들의 색깔,
흐드러지게 어우러져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배치한다. 멀리서 쳐다보고는 이러면 더좋겠는데
하고 다시 바꾸어 심는다. 물을 주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다시 점검한다. 조그만 화분에서
움추렸던 뿌리들을 흙 속으로묻어주면서 기쁘다. 시들었던 연약한 가지가 화려한 꽃들을 분주히
달아내는 싱싱한 화초로 바뀐 것을 보는 뿌듯함이란 무어라 하겠는가.
나는 계절따라 꽃을 바꾸는 가드닝을 반대한다. 비록 꽃이진다 할지라도 살아있기 때문이다.
묻어놓으면 내년에 다시 예쁜 꽃을 줄 것이다. 나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싶다.

김 장 숙 <시네마 덴탈케어 원장> Tel. (661) 253-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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