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가 신경숙 씨의 책

내 남편은 한국에 살고 나는 미국 엘에이에 산다. 그가 집에 올 때마다 나에게 해주는 가장 기쁜
선물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신간을 몇권 사가지고 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책들을 읽고
치과의 대기실에 선심쓰듯 내어 놓는다. 이십년 전에 떠나온 나의 고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요
나의 정체감을 한국어라는 언어와 그 속에 묻어오는 문화를 통해서 회복하는 작은 노력이다.
아니, 책도 안읽는 여자에서 신간을 항상 꿰뚫는 여자로 탈바꿈을 하는 묘책이다.
내가 작가 신경숙 씨의 책 “엄마를 부탁해”를 가졌을 때 책표지의 광고에 이런 글이 있었다.
2008년 발간된 소설. 이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 미국, 영국, 폴란드 등의 22개국에서
출판되었다.
도데체 무슨 책이길래 외국에서도 번역되어 읽혀지는 것일까? 궁금증이 더해졌다. 그러나 내가
그 책을 심취해서 모두 읽고보니 그 배경이 지극히 한국적임을 알게 되었다. 잘나가는 작가로
성장한 딸이 행방불명된 엄마를 애타게 찾아다니며 엄마에 대한 회상을 한다. 시골에서 자란
옛날 지난 날들 속으로 들어가 엄마를 다시 만나는 것이다. 등장하는 아버지, 아들, 시동생,
엄마의 애인… 엮어진 얘기들 속에 한국 고유의 정서와 가난과 설움의 한이 물씬 묻어나는 것을
어떻게 외국인들이 알까?
아마도 과잉선전이겠지 하고 무시해버리기로 했다. 다만 박소녀라는 그 여인의 존재감을
박탈당하며 드러남이 없었던 한 여인의 일생이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개성을 가진 한 인격으로
다시 표현되고 사랑받는것이 좋았다. 나도 같은 문화 속에 사는 한국 여자요 네 아이의
엄마이므로 공감을 하며 말이다. 그러나 얼마 전에 독일에 사는 언니와 전화통화를 하는 중에
이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니가 60세 회갑을 축하해주는 딸의 호의를 입어 기차여행을
하고 있었다. 옆에 앉은 독일 남자가 바로 그 한국작가 신경숙 씨가 쓴 책의 번역판을 읽고 있었다
한다. 자기의 독서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읽고 있다고 언니에게 책을 보여주었는데 그 제목은 “Als
Mutter verschwand” 한국 말로 직역을 하면 “엄마가 사라졌을 때” 더 어울리는 것 같지? 하며
언니가 말했다.
지독하게 한국적으로 쓰여진 책에 왜 동서양 사람들이 동시에 관심을 일으키는 것일까?
내가 인터넷에서 찾은 이 책에 대한 글을 소개해본다
‘서울역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고 난 후, 딸과 큰 아들, 아버지, 어머니가 화자로 등장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엄마를 이야기 한다. 언제나 그 곳에 ‘엄마’로 있어줄 것 같았던박소녀라는 이름의
여자를없어진 후에야 엄마의 평생을 걸쳐 받아 마땅한 관심과 위로를 받는다.’
엄마라는 자리는 드러나지 않는 희생과 헌신의 자리요 보이지 않고 알려지지 않는 자리이지만
잃고난 후에 영원히 삶 가운데 자리잡는 엄마의 존재,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느낌을 경험하기
때문일까? 청개구리가 비오는 날이면 시냇가에서 개굴개굴하고 목놓아 우는 이유를 우리 모두가
알듯이 말이다.
혹은 부모가 살던 세대와 다른 문화 속에 살게 되는 자녀와의 갈등과 단절을 누구나 느끼기
때문일까? 좋은 소통을 이루어가는 것이 자연스럽게 쉽지는 않고 때론 동기부여가 있어야
소통의 필요함을 깨달아 알고 노력을 하게 된다. 이 동기부여가 상실이라든지 죽음 이라든지
하는 마지막 단계가 아니기를 바란다.

또한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고령의 시대가 되면서 알츠하이머라는 괴상한 병을 전혀 무시할 수
없음이 피부에 닿기 때문일까? 현대인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은 당뇨와 고혈압도 아니요, 암도
아니요, 에이즈도 아니요, 바로 이 알츠하이머라는 질병이다라고 벌써 선언되었다.
어렸을 적에 익숙하던 아니면 과거의 기억 속에 있는 한 장소를 집착하며 그 곳에 가려고 수도
없이 집을 나가는 끈임없는 시도는 정말로 눈물겹다. 다시 찾아온 아버지를 또 잃어버리고, 한 밤
중에 전화받고 또 찾으로 가고… 여러 에피소드를 얘기하며 그럴 때는 셀폰의 고마움도
새삼스럽다 했다.
양로병원에 계신 엄마를 챙기기로 하고 형제들과시간표를 짜더라도 마음이 편치않아 아예 그
근처로 이사해버린 에스더. 싼타 클라리타 메거진을 통해서 만난 내환자 쥬디는 90세된 아버지와
집을 합해 은퇴후에 함께 산다. 오전에는 아버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으므로 오후 3시 이후에
치과약속을 요청하는 그녀는 당뇨약이나 고혈압 약의 부적응증으로 뇌의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해서 아버지의 기억력이 더욱 없어질 수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뇌세포의 기능이 점점
감퇴되어 어린아이 처럼 변해가는 아버지와 함께 산다. 조건없이 딸의 보살핌을 받는 아버지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얼마 전에는 나도 이젠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언제나 나의 꿈을 펴고
노력하기에 급급했던 나 자신에게 스스로를 제어하는 마음의 여유를 보인 것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나의 꿈보다는 자녀들의 꿈을 피우도록 기도하고 다음세대에 대하여
희망과 소원을 갖아야한다고 말이다. 그들을 격려하고 기르고 키워주자. 동시에 우리의
나이먹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아보자. 소박하게 이미 인생의
철학을 터득하고 살았던 ‘엄마를 걱정해’ 속의 주인공 ‘박소녀’처럼 말이다.

김 장 숙 <시네마 덴탈케어 원장> Tel. (661) 253-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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