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첫째 주 토요일에는 큰 집 조카 딸의 결혼식이 있었다.

지난 10월 첫째 주 토요일에는 큰 집 조카 딸의 결혼식이 있었다. 장소는 뉴욕의 롱아일랜드에
있는 조용하고 분위기있는 감리교회였다. 큰 엄마인 동서의 말을 빌리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신랑 신부가 알아서 준비하고 비용을 마련해서 했다는 것이다. 음식이며, 꽂장식이며,
피로연의 음악과 사회자의 노련한 진행솜씨며, 마지막 한국 재래식 폐백까지 어쩌면 저렇게
훌륭하게 준비해서 해냈을까 무척이나 대견했다. 목사님의 주례 하에 신랑에게 신부를 아내로
맞이하여 평생 사랑하겠냐는 언약의 질문에 신랑은 교회가 떠나갈 듯이 “네”라고 대답을 했다.
결혼식은 저녁 7시 반에 시작했는데 계속하여 피로연이 이어졌다. 신부는 사회자의 권유대로
12시까지 바뀌는 상대들과 춤을 추어야했다. 신부가 생글거리며 지침도 없이 끝까지 해내는 것을
보면서 정말 대단해라고 감탄해마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축복해주었고 나 또한 토요일 아침에 첫 비행기로 뉴욕을 향하여 출발하였고
결혼식이 끝난 다음날 다시 비행기를 타고 LA로 돌아왔다. 결혼식이란 정말 축복을 받을만한
인생의 새출발이기 때문에 모두가 물심양면으로 격려하고 축복하는 것이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의 실상 뒤에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와 감수해내야하는 과정들이 있음을 우리는 삶의 경험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아이들의 큰 집은 1997년에 뉴욕으로 이민을 왔다. 경기여고를졸업하고 연대에서 불문학과 성악을
이중으로 전공한 동서는 미국에 온 후 10년도 넘게 우체국으로 출근하여 밤근무를 한다. 서울대를
졸업한 엘리뜨 큰아빠는 미국생활에 적응하기보다는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버렸다. 이번에 결혼한
조카딸은 이들 사이에 태어난 세 자녀 중의 장녀이다. 바로 밑의 남동생은 결혼식장에 참석하질
않았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는가보다. 웃음의 뒷면에 숨겨놓은 눈물, 이것을 인생이라 말하는
것인가.
얼마 전에 독일에 사는 둘째 언니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28년 째 결혼해서 함께사는 형부가
뇌종양으로 진단을 받고 투병하는 처절한 모습을 글로 담아 전해줄 때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시리고 아팠다. 우리 집은 딸이 넷이였다(물론 아들도 셋이 있었음). 큰 언니는 일찍 결혼을
했고 나머지 세 자매가 같은 해에 결혼을 했다. 이 세 남자들은 동갑내기이다. 그 중에 형부는
건강관리를 제일 잘하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그러한 형부가 가지고 있는 남은 인생은 3년, 길어야
5년이라고 하였다. 그 기간이 건강하고 평안하다면 얼마나 좋으랴. 몸이야 비록 핍절하겠지만
언니와 두 자녀, 마리아와 요한이가 형부와 더불어 꾿꾿이 살아주기만 기도할 뿐이다.
나면서부터 장님이요, 귀머거리요, 벙어리였던 헬렌켈러는 스베덴보리의 글을 통하여 천국이
있음을 믿게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천국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내가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 영원히 살
수 있음도 알았습니다. 나는 그 책을 읽은 후 죽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헬렌켈러는 역경을 이겨낸 고상한 성품 때문에 우리에게 늘 기억되는 존재이다. 그녀가 있기
때문에 견디기에 벅찬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그래도 지금의 나는 장님이요, 벙어리요,
귀머거리였던 그녀보다는 낫지 아니한가 라고 생각한다. 나의 현실이 제일 어려운 것같고 나만
불행해보이면서 내 주위의 모도가 너무나 행복하게 잘 사는 것처럼 생갈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그러나 흔히 하는 말, 뚜껑을 열어놓고 보면 누구나 사는 것은 똑같애.

김 장 숙 <시네마 덴탈케어 원장> Tel. (661) 253-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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