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뮤어 트레일(JMT) 산행기 <4>

‘보릿고개’연상된 식량과의 싸움

세영아, 왜 그렇게 시무룩해?”
뮤어 트레일 렌치에서 식량을 재공급 받고 나오는데 세영이의 얼굴이 밝지 않았다.
“엄마, 우리가 8일 더 남았다고 했는데 식량이 7일 분이야.”
한달 전에 부친 재공급 식량을 찾으러 갔다. 서 선생님은 곧 두 버킷을 받아서 그늘에 앉아 뚜껑을 뜯어내어 쏟고 계셨다. 부친 후 일주일 만에 확인하셨다 한다. 건물 안에 버킷들이 산더미처럼 있는데 우리 것을 못 찾아냈다. 뚜껑이 무슨 색이냐고 묻기에 빨간색이라고 대답했더니 겨우 찾아주었다. 기다리던 짧은 동안 확인 안했던 나 자신을 반성도 했고 90달러나 낸 수수료는 어떻게 되나,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너무 많은 생각들이 교차되었다.
뚜껑을 열자 나온 게토레이를 모두 한 병씩 나누어 마셨다. 소이밀크도 따라서 한 대접씩 나누었다. 미지 언니도 파워 바가 너무 많다고 세영이, 마리아에게 한 주먹씩 주셨다. 어떤 여자가 자기의 식량이 너무 많다고 들고 다니면서 필요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나는 탈지우유 한 팩과 미소수프 가루가 든 봉지, dry frozen 과일을 얻었는데 엄마는 걸인처럼 받아간다고 세영이가 못마땅해 했었다. 그런데 지금 마리아와 세영이가 서로 얘기하더니 나에게 사실을 일깨워준 것이다.
이번 존 뮤어 트레일은 식량과의 싸움이었다. 마지막 위트니 산을 오를 때 다리가 공중에 뜨는 기분은 고산 증후군인지 영양실조 현기증인지 지금도 분간을 못하겠다.


<세영이와 마리아가 재공급 식량 버킷을 받아 뚜껑을 뜯어내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서 옥수수 빵을 보급하였다. 전쟁 이후 유엔에서 도와준 식량보조였다. 쌀이 모자라서 도시락에는 보리쌀, 잡곡, 콩들을 섞어야 했고 선생님이 도시락 검사를 해서 쌀밥이 발견되면 손바닥을 맞았다. 그 보릿고개를 이번 트레일에서 경험했다.
잠시 길가에 앉아 쉬면서 에너지 바를 먹는 나를 세영이가 물끄러미 바라보면 뚝 잘라서 줄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양식이 모자라는 것을 눈치 채셨는지 미지 언니는 자주 입이 깔깔해서 안 넘어가네 하시면서 조끼 주머니에서 스낵을 꺼내서 우리에게 주시곤 했다. 길가의 풀들도 뜯어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무의 빨간 열매도 보암직하고 먹음직 해보였다. 하루 종일 무거운 백팩을 메고 걸으면서 물만 자꾸 들이켰다. 세영이와 마리아가 자기들의 곰통 안에 있는 먹을 것을 서로 얘기하며 비교하고, 교환하는 것을 보면서 안쓰러웠다.

8일이상 남은 일정에 7일분 뿐
주린배 움켜잡고 물만 들이켜
다른 등산객에 식량 구걸까지

내가 식량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실수를 한 것이다.
우리는 아침으로는 오트밀 팩 2개씩, 점심으로는 에너지 바 하나, 중간에 스낵으로 트레일 믹스 하나, 저녁으로는 dry frozen food 4인분을 셋이서 나누어 먹었다. 세영이가 우리가 먹는 식량의 하루 칼로리가 900이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격렬한 운동하는 사람은 1,500~2,000칼로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달 전에 서 선생님 부부와 준비산행을 했다. 경험 없는 세영이에게 마지막으로 동행을 결정할 기회를 주고 싶었고, 나로서는 장비와 식량을 테스트 해보고 싶었다.
앤젤레스 마운틴의 PCT 구간인 Mill Creek Summit에서 Agua Dulce까지 36.90 마일을 걸었다. 3일간의 여정이었다. 그때는 7월이었다. 정말 덥고 물은 말라 있었고 모기가 많아서 고생했다. 팍 레인저마저도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세영이는 거의 기진맥진해서 포기할 정도로 잠시 누워 있었던 경험도 했다. 거기에 비하면 존 뮤어 트레일은 물도 많고 모기도 없을 뿐 아니라 기운차고 재미있었다. 그러나 음식의 양을 그 때의 기준으로 설정한 것이 큰 실수였다. 더위에 지치고 갈증 때문에 거의 안 먹었던 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Silver Pass(1만0,900)를 지나서 내려오면 Edison Lake에서 페리호를 타고 들어가는 Vermillion Valley Resort가 있다. 그 곳이 유명한 또 다른 재공급지역이다. 거기서 백팩을 가득 채우면 그 무거운 백팩을 메고 험악한 Bear Ridge Summit을 지나 Selden Pass(1만900)를 올라가야 한다. 거의 빈 곰통을 달랑거리며 내려올 때 너트가 가득 든 봉지를 들고 먹으면서 오는 한 사람을 만났고 그 부러움은 표현할 수 없었다. Vermilion에서 하룻밤 자고 나온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우리도 내일은 오늘하고 다를 것이다. 희망을 품고 그 사람을 지나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영이에게서 식량이 부족하다는 보고를 받고는 참으로 민망하고 허탈했다. 비프 저키를 통째로 들고서 그늘에서 쉬고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땐 우리의 문제를 솔직하게 얘기해 보았다. 그는 자기도 넉넉지 못해 도와줄 수 없으니 미안하다고 말했다.
친구랑 둘이서 출발했고 이번이 세 번째 마지막 구간을 완성하기 위해 휴가를 받고 왔다고 했다. 모든 것을 계획한 그 친구가 갑자기 컨디션이 나빠져 돌아가야 했고 불행히도 그의 백팩에 많은 분량의 식량이 있었던 것을 그냥 보냈다 했다. 그는 나와 똑같은 텐트를 플라이 없이 갖고 있었다.
친구가 플라이를 가지고 갔다 했다. 2인용 텐트를 어떻게 혼자 치냐고 물으니 재빨리 폴을 잡으면 가능하다고 했다.
마운틴 위트니에서 내려올 때 올라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에게는 충분한 음식이 있음을 의심치 않았다. 우리는 하룻밤만 더 자면 됐다. 그러나 지금 배가 고팠다. 나는 사정을 얘기하고 식량을 얻고 싶었다. 세영이와 마리아에게 상의했더니 차라리 배가 고플망정 구걸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마지막 산에서 캠핑하고 자던 날 그 곳이 Outpost Camp였는데 아름다운 장소였다.
위트니 포탈 직전에 위치한 곳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은 오트밀 전부와 어떤 여자에게 얻은 미소수프 된장가루였다. 물을 많이 잡고 함께 끓이니 훌륭한 죽이 되었다.
생각보다 맛있고 배불렀다. 세영이가 주머니에서 파워 바 하나를 꺼내더니 셋으로 나누었다. 날짜를 카운트하면서 아끼며 남겨놓은 것을 함께 한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은 미지 언니가 주신 미숫가루를 끓여서 배불리 먹었다. 그 후 집에 돌아와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때 사진을 보면 그렇게 날씬했을 수가 있을까 믿어지지 않는다.

<마지막 캠핑하던 날, 배가 고파 오트밀과 미소수프를 끓여 죽을 만들고 있다>

김 장 숙 <시네마 덴탈케어 원장> Tel. (661) 253-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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