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급하게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마땅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아침을 급하게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마땅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9시에 시작하는 첫 환자를 생각하며 시간을 다투며 준비하는데오래 생각하며 망설이면차질이 있다. ‘그러면 아침을 건너뛸까?’ 그래도 하루의 중노동을 위한 에너지가 나와야하는데… 하면서 계란 두개를 꺼내어 에그 스트램불을 만든다. 밥 위에 올려놓고 먹으니 가끔씩 씹히는 짭짤한 소금맛과 고소함이 어우러져 제법이다. 계란 노른자를 완전히 익혀서 먹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서 다 익었는 지 다시한 번 살펴보니 고소한 맛이 살짝 안익은 노른자에게서 난다. 그렇지, 완전히 익은 계란은 텁텁하여 체하기 십상이지. 그러면 내가 안익은 상태로 계란을 먹었으니 계란이란 매체를 통해서 위험한 것들이 내몸에 들어왔을까? 아직도 나에게는 계란은 계란이지 몬스터가 아니다. 아무리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과정들이 생산하는 과정에서 있다할 지라도 그냥 계란임을 인정하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노른자위도 먹는다. 나는 나의 콜레스테롤이 보더라인이지만 노른자위를 떨쳐버리는 것이 웬지 죄스러운 생각이 들어 차마 실행하질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과 최근의 긍정적인 의견들이 서로 엇갈리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것을 떠나서 계란과 노른자위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고 맛이 있으니 먹는다.

나는 지금 큰 딸하고 함께 산다. 하루는 늦게 들어온 그녀가 자기는 계란밥을 먹을 것인데 엄마도 해줄까? 하고 묻는다. 노 땡큐. 엄마 한 번 먹어봐. 따듯한 밥에다 진간장 넣고 계란 넣고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서 비벼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우리집 큰 딸은 음식에 관한한은 무척 까다롭다. 정성들여 준비하여 품위있고 때깔있게 차려서 먹어야 한다. 그녀가 만든 저녁을 내가 일 끝나고 돌아와 너무 배가 고파서 잘 차리지 않고 범벅이되게 허겁지겁 먹으면 외계인 쳐다보듯이 나를 대한다. 둘째가 언제인가 언니에게 계란밥이 얼마나 맛있는 지 말하는것을 나도 들었다. 그 후 어느 날 내가 밤늦게 들어와서 부엌에 나가보니 국그릇 하나와 숫가락이 씽크대에 던져져 있었다. 국그릇에는 밥을 간장과 계란으로 비벼먹은 흔적이 보였다. 그녀가 동생 말대로 손쉬운 계란밥을 시도해보았음이 분명했다. 그래서 사실은 그날 밤 나도 계란밥을 진간장을 넣고 해보았다. 그러나 진간장이 너무 많이 들어갔는 지, 참기름을 조금 쳤는 지, 내가 만든 계란밥은 너무 짠데다가 감칠 맛이 없었다. 그 맛은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셔서 먹던 것과는 달랐다.
엄마는 계란을 사러 박 집사님집에 가실 때에는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 집에 가면 남아있는 모든 공간을 닭장으로 만들어 제법 많은 달걀을 생산해내었다. 박집사님은 낮에는 리어카를 끌고나가 다른 장사를 하시므로 엄마는 저녁 때 방문하곤 했다. 엄마는 양동이를 가지고가서 계란을 받아왔는데 그것을 들고 올때는 계란이 서로 부딪혀서 깨지지 않도록 기술껏 들고와야 했다. 한걸음 한걸음 막 해가 떨여져 어두워진 길을, 포장이 안된 울툴불퉁한 길을 살얼음 걷듯 조심조심 양동이를 모시고 돌아오던 기억이 난다. 한 두개가 맞닥뜨려 금이가면 그날 저녁 메뉴에 수란이 등장한다. 물이 팔팔 끓으면 계란을 깨서 넣고 익힌다. 엄마는 한 사람에 하나씩 이를 그릇에 떠주셨는데 우리는 흰 자위의 마지막 남은 건데기까지 숟가락으로 열심히건져먹은 후 아까운 국물을 마시곤 했다. 박집사님네 닭들이 한 줄이 되도록 열개를 미처 생산하지 않았거나 다른 손님들이 이미 방문하여 계란을 사간 날에는 허탕을 쳤다. 그러면 다음 날, 그 집의 큰 아들 대형이 오빠가 볏집으로 엮어만든 한 줄짜리 멋있는 컨테이너에 계란 열 개를 담아서 배달을 왔다. 그 당시 책 속에 잘 이용했던 삽화 중의 하나가 이러한 모습의 계란이었다. 가로로 넉넉하고 풍성하게 배열한 지푸라기속에 계란이 앉아있고 이를 세로로 묶어줌으로써 낱개씩 안정감있게 고정한 모습의 그림을 말한다. 그 이후에 양계가 보급되면서 계란을 담는 판이나오게 되었다.
나는 나의25주년 결혼기념으로 아프리카여행을 하였다. 5박 6일의 킬리만자로 산행과 4박5일의 사파리를 포함한 기획이었다. 나는 LA에서 출발하였고, 나의 남편은 한국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탄자니아에서 만났다. 우리는 신혼 때부터 안나푸르나와 킬리만자로를 동경해왔고 드디어 은혼식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킬리만자로 산행을 이루게되었다.
이 여행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계란 이야기이다. 산행을 시작하는 날, 아침에 모든 짐을 점검하고 무게를 잰다. 한 개의 짐의 무게가 일정한 무게( 내 기억에 40KG)를 초과하지 않아서 포터들이 무리하지 않고 잘 다룰 수 있게하기 함이다. 킬리만자로 산행은 외국인이 짐을 메고 가지 않고 짐을 대신 운반하는 포터와 가이더를 고용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입산 허가를 얻질 못한다. 우리는 가장 알려져있고 무난하고 쉬운 마랑고 루트를 택했지만 워낙이 만 팔천 피트가 넘는 높은 산이므로 기대와 긴장감으로 흥분되었다. 많이 널부러져 있는 포터들이 가져온 자신들의 짐 중에는 손잡이가 달린 깡통이 많이 있었다. 산행을 하는데 웬 동냥 깡통들인가 하며 들여다보니 그 속에는 계란들이 나무 잎들과 풀숲에 쌓여 포근하게 앉아 있었다. 우리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가져가는 계란들이었다. 산행 중 오다가다 만난 많은 포터들이 한 손에는 짐을 어깨에 들쳐메고 다른 한 손에는 계란이 든 깡통을 조심스럽게 들고 있었다.

 

탄자니아에서는 호텔에서나 킬리만자로 산행에서나 ‘에그’를 어떻게 먹을것인지 물어본다. 삶을 것인 지, 스크램불을 할 것인 지, 아니면 해처럼 노른자가 드러나게 한쪽만 익힐 것인 지 결정하여 말해주면 요리한 ‘에그’를 에피타이져로 준다. 호텔에서는 시금치 혹은 치즈 등과 혼합된 스크램블을 주로 먹었다. 그러나 산행에서는 삶은 계란이 보다 위생적일 것 같아서 항상 ‘보일드’라고 대답했는데 우리는 껍질이 있는 원형 그대로의 계란을 보고 누구 것이 큰가 비교하곤 했다. 막 말로 주먹과 엄지 손가락처럼 차이가 났다. 탄자니아와 킬리만자로에서 먹은 계란들은 집단 양계에서 온 것들이 아니고 놓아기른 토종닭에서 나온 것들임에 틀림없다. 각각의 크기가 눈에 띄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신선하고 샛노란 탱탱한 노른자위를 볼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보약과도 같은 보기 드물게 귀한 것들을 먹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아끼고 기른 것들을 먹었기에 무엇보다도 가치있는 것을 가졌던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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