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늦잠자는 주일날

모처럼 늦잠자는 주일날 아침, 전화벨 소리에 할 수 없이 일어났다. 막내아들 세영이였다. 그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치과대학을 시작하기 위해 사흘 전에 차를 가지고 집을 떠났다. 그는 그의
고집대로 1991년 혼다 시빅을 천 칠백불을 주고 구입하여 이십 사만 마일을 뛴 18년 된 차를 가지고
이동 중이니 그가 필라델피아에 도착할 때까지 나의 마음은 그를 향할 수 밖에 없다. 그는 지금
맘모스 케이브에 도착했는데 지난 가족여행 때 했던 트레일을 혹시 기억하는 지 물어 보았다.
나의 가족여행을 꼽으라면 한국에서 미국오기 전에 한 달 동안 했던 여행과, 미국에서
USC치과대학을 졸업하던 해 여름방학에 아이들과 함께 보낸40일간의 여행을 말하고 싶다.
미국으로 이민오기로 결정하여 비자 인터뷰를 끝낸 후 나는 치과를 정리했고 아이들은 학교를
중단했다. 5월달 이었다. 우리는 한국을 떠나기 전에 곳곳을 속속들이 살펴보기로 했다. 서울에서
동해안으로 38선을 넘어서 북쪽 고성의통일 전망대까지가서 그곳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동해안을
타고 남으로 내려와서 남해안을 끼고 서쪽으로 간 후 땅끝마을을 보고 서해안을 타고 북으로
올라가기로 계획하고, 발가는대로 마음가는대로 옮기기로 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동해안 따라 아슬 아슬했던 도로들과, 울진 석류굴, 경주 석굴암, 팔만 대장경이 있던 합천
해인사, 바람불고 비오는데 우산쓰고 서서보던 땅끝마을의 바닷가, 아—빼먹을 뻔 한 안동의
하회마을… 나의 남편은 일을 해야 했으므로 해인사까지 보고 서울로 올라갔다. 남은 우리들은
계속 신나게 여행을 했는데 목포의 식당에서 끝없이 나오는 밑반찬에 우리 아이들조차도 감탄하며
즐겁게 먹었었다. 춘향이 살던 남원의 오작교, 그리고 대나무가 많았던 어떤 절, 아이들은 사찰에
가면 연못 속에 빠진 동전을 주워볼려고 수도 없이 노력했다. 격포 채석강에서 썰물 속에 남은
바닷물에서 수 없이 잡았던 불가사리, 부여의 낙화암 밑을 지나가는 배에서 볼부은 모습으로 찍은
사진, 계룡산 갑사에서 땅바닥에 사주 좌판을 벌여놓고 돗자리에 다리 꼬고 앉아계신 갓쓰고
수염기른 할아버지랑 찍은 사진… 여행에 지칠즈음, 날마다 빨리오라고 성화대는 남편을 핑계로
우리는여행을 중단하고 계룡산에서 서울로 향했다.
아이들은 서로 싸우고, 동전줍고, 풍뎅이 갖고 놀고, 우산가지고 놀고 했는데 그래도 추억이
있었나보다. 세영이의 쌍둥이 짝 누리가 방학을 이용하여 한국을 방문 중이다. 그녀가 며칠 전에
전화했는데 외삼촌 가족과 여수를 여행하면서 겪은 일들을 얘기했다. 그녀는 자기가 10살 때 했던
가족여행을 더듬어 기억하며 말했다. 그녀는 지금 스물이 넘었다.
미국에 이민와서 서부의 로스앤젤러스에 거주를 정했기 때문에 동부는 어떤 곳인가, 다른 미국의
모습은 어떠한가 호기심이 많이 일어났다. 그래서 치대 졸업 후 시간이 생기자 아이들 네 명을
미니벤에 태우고 9,500 마일의 여행을 시작했다. 101번 후리웨이를 타고 북으로 올라가서 올림피아
내셔날 파크를 가로질러 워싱턴 주의 아름다운 비취를 만끽한 후, 페리호를 타고 브리티쉬
아일래드의 뷰쳐가든으로 갔다. 다시 대륙으로 돌아와 아이다호, 몬타나 주를 거쳐 동으로 동으로
뉴욕에 도착할 때까지 내셔날 파크를 주제로 이동하였다. 몬타나의 글라시아 내셔날 파크에서는
아름다운 썬 라이즈 로드의 산 중턱, 위핑 락(weeping rock) 에서 차가 고장나서 견인되어 내려왔던
기억, 아이다 호의 정말 시골 도시에서 우리가 묵었던 베스트 웨스턴 모텔의 주인이 한국분이어서
가면서 먹으라고 바나나랑, 티셔츠랑, 일회용 카메라랑 자꾸만 싸주시던 그 때 그 마음, 가도가도

끝이 없는 빅 스카이 와이워밍주의 한적한 고속도로, 바다와 다름없는 시카고의 거대한 호수, 천둥
번개가 무섭게 치던 산속의 밤 운전, 부산한 동부의 후리웨이에서 트레일러 숲속에 갖혀서 운전을
게속해야 했던 긴장감…. 드디어 뉴욕의 복잡한 도심을 캘리포니아 번호판을 달고 누볐다. 하루에
500마일씩 운전했고 아이들은 자는 듯, 조는 듯 하면서 많은 것을 보았다. 일을 해야했던 남편은
비행기를 타고 뉴욕의 누님 댁으로 와서 우리는 합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그가 운전을
하였다. 오늘 세영이가 말하는 맘모스 케이브는 켄터키 주에 있다. 우리가 방문한 셰난도에,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튼과 더불어 동부의 내셔날 파크 중의 하나였다.
세영이는 지금 운전하여 동부로 가면서 그 옛날 그가 열 세살에 했던 가족여행을 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나의 즐거웠던 그 여행이 나의 아이들에게도 의미가 있었나보다.

김 장 숙 <시네마 덴탈케어 원장> Tel. (661) 253-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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